육아서대로 했는데 왜 우리 아이는 다를까? — 300년 동안 풀리지 않은 삼체 문제가 준 뜻밖의 위로 (1)

육아라는 삼체문제 · 1편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대학에서 학교상담(school counseling)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상담교수입니다. 아이들 곁에 설 예비 상담 선생님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제 일이지요. 그런데 이 일을 오래 하면 할수록,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혼란”의 연속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다들 고생 많으시지요? 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로 일을 하다보니, 조금이라도 우리 학부모님들께 도움이 될만한 주제들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 부모님들의 혼란과 관련하여 이야기 하나 풀어놓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금 엉뚱하게도 300년 된 수학 문제에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먼저,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네, 있으실거에요…

  • 육아서를 밑줄 그어 가며 읽고 그대로 해 봤는데, 책 속의 아이와 우리 집 아이는 전혀 다르게 반응합니다.
  • 첫째에게 잘 통했던 방법이 둘째에게는 하나도 통하지 않습니다. 같은 부모가, 같은 집에서, 같은 마음으로 키웠는데도요.
  • 친구네 아이는 그 학원에 다니고 성적이 쑥 올랐다는데, 우리 아이는 같은 학원에서 오히려 시들어 갑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은 보통 두 갈래 중 하나로 갑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아니면 ‘우리 애가 좀 유별난가.’ 오늘 저는 세 번째 가능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 잘못도, 아이 잘못도 아닐 가능성. 애초에 육아라는 시스템 자체가, 그 누구도 완벽히 예측할 수 없게끔 생겨먹었을 가능성입니다.

300년 동안 풀리지 않은 문제

물리학에는 ‘삼체문제(三體問題, three-body problem)’라는 유명한 난제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덕분에 이름은 익숙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 자체는 단순합니다.

우주에 천체가 두 개 있으면 — 지구와 달처럼 — 서로 중력으로 끌어당기며 움직이는 궤도를 수학으로 깔끔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100년 뒤, 1,000년 뒤의 위치까지 정확하게요. 그런데 천체를 딱 하나만 더 보태서 셋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세 천체가 서로를 동시에 끌어당기기 시작하면 시스템은 ‘카오스’가 됩니다. 거의 똑같이 출발한 궤도가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갈라집니다.

왼쪽은 계산 가능한 질서, 오른쪽은 300년째 풀리지 않는 카오스입니다.

뉴턴 이래 300년 넘게 인류 최고의 수학자들이 매달렸지만, 결국 증명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일반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데이터가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시스템의 구조 자체가 장기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 세개의 물체만 있어도 우리는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을 거의 할수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몇 개의 천체가 필요할까

이제 우리 집 거실로 돌아와 봅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몇 체 문제일까요?

아이가 하나의 천체입니다. 엄마가 하나, 아빠가 하나. 벌써 삼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지요. 형제자매, 할머니 할아버지, 담임 선생님, 단짝 친구, 학원, 유튜브 알고리즘, 아이가 타고난 기질, 그날그날의 컨디션, 부부 사이에 흐르는 공기, 부모의 직장 스트레스까지. 이 모든 것이 저마다의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며 움직입니다. 하나가 움직이면 나머지 전부가 조금씩 흔들립니다.

하나가 움직이면 나머지 전부가 조금씩 흔들리는, “우리 가족”이라는 우주.

셋만 되어도 카오스인데, 육아는 족히 백체(百體) 문제인 셈입니다. 네.. 애 키우기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니 옆집 아이에게 통했던 방법이 우리 아이에게 통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입니다. 옆집은 완전히 다른 천체들로 이루어진, 완전히 다른 우주이기 때문입니다. 첫째와 둘째가 그토록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가 태어나는 순간, 가족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이미 다른 시스템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첫째는 천체가 셋인 우주에서 자랐고, 둘째는 넷인 우주에서 자랍니다. 두 아이는 같은 우주에서 자란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정답’을 찾아 헤매는 밤들에게

아이를 재워 놓고 맘카페를 뒤지고, 머리맡에 육아서를 쌓아 두고, 유명하다는 강연을 찾아 듣는 그 마음을 저는 압니다.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대개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정답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못 찾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그림자에는 이런 자책이 함께 삽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건, 내가 그 정답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삼체문제는 이 믿음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아주 단호하게 말해 줍니다. 고작 세 개의 천체조차 완벽한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데, 수십 개의 변수가 실시간으로 서로를 흔들어 대는 시스템에 ‘누구에게나 통하는 정답’이 존재할 리 없다고요.

300년 동안 인류의 가장 뛰어난 두뇌들이 풀지 못한 문제 앞에서, 오늘 밤 아이를 재우고 죄책감으로 검색창을 두드리는 당신이 스스로를 탓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오히려 허무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뭘 해도 소용없다는 얘긴가요?’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삼체문제가 정말로 가르쳐 주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훨씬 실용적이고 희망적인 무엇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삼체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해서 물리학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공위성이 100년 뒤 어디를 돌고 있을지 계산하지 못하면서도, 오늘 위성을 쏘아 올립니다.

‘전부를 예측할 수 없다’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이 바로, 부모가 서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이의 20년 뒤는 몰라도, 오늘 저녁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요.

(2편에서 계속)


위로 스크롤